제3장 통치체




제3장 통치체

  •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의 주인이 아니라, 여러분의 기쁨을 위한 동료 일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믿음으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 고린도후서 1:24

위에 인용한 사도 바울의 말은 통치체에 있던 9년 동안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떠오른 말입니다. 나는 모든 증인들이 이런 경험을 직접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말만 듣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통치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역자 1]) 통치체 - 한국어로 “통치체”라는 말은 영어 “거버닝 바디”(Governing Body)를 직역한 말이며 “통치하다”, “지배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동사 "거번"(govern)에서 나온 말이다. “통치체”라는 번역은 한국의 증인들이 수십 년 이상 익숙하게 사용해온 말이다. 그런데 2015년 중반부터 여호와의 증인 한국 지부는 “통치체” 대신 “중앙장로회”라는 번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협회 본부가 영어 표현을 바꾸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증인 조직은 여전히 그 단어(Governing Body)를 사용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이 표현을 한국어 “통치체”와 같이 직역한다. 예외적으로, 우리와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과 대만에서는 일찍부터 “거버닝 바디”(Governing Body)를 번역할 때 “중앙장로단”(“쫑양짱라오투안”: 간체:中央长老团, 번체:中央長老團)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는데, 한국어 표현이 이처럼 바뀐 정책상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한편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통치체”(“토오치타이”: 統治体)라는 번역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Governing Body”를 번역할 때 “중앙장로회”라는 대체 용어 대신 “통치체”라는 직역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중의 머리로서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반열(집단)을 통해 자신의 회중을 먹이고 다스리신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반열은 그리스도의 하늘 왕국 상속자(후사)들로서, 기름 부음 받은 14만 4,000명 중 남은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각주 2)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사용하신 비유 가운데 등장하는데, 그 비유는 마태 24:45-47에 나온다. 또한 14만 4,000명이라는 숫자는 계시록 14:3에 나온다.] 하지만 이 반열 중에서 소수의 남자들만이 통치체로 일하게 되며 그들은 전 세계 회중의 행정적 기능을 관리합니다. [역자주 3) “통치체”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반열을 대표하며,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반열은 사실상 “기름부음받은” 남은자들로서 기원 33년부터 존재했다는 이 가르침은 2012년에 변경되었다. 좀 더 자세한 점은 이 책 3장 끝에 있는 각주 참조.] 그들은 현재 약 8,500명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상속자로 간주되지는 않지만 함께 연합하고 있는 610만 명이 훨씬 넘는 다른 증인들도 관리 합니다. [각주 4) 「파수대」2004년 1월 1일호 21면 참조. (역자: 본문에 나온 통계는 2003 봉사 연도 기준이다. 2014년을 기준으로 하면 평균 전도인 수는 786만 7,958명이며, “표상물 취한 자” 즉 “기름부음 받은 자”로 공언한 사람들의 수는 14,121명이었다.)]

1971년에 11명의 통치체 성원으로 초대받았을 때, 이것은 나에게 막중한 의무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숫자는 1977년에 18명으로 증가했다가, 2004년 현재는 10명이 되었음) [각주 5) 그 당시에 규모가 커진 통치체 성원 11명은 다음과 같다: 네이선 노어, 프레더릭 프랜즈, 그랜트 수터, 토마스 설리번, 밀턴 헨첼, 라이먼 스윙글, 존 그로우(여기까지 일곱 명은 워치타워 협회 이사회 명단), 여기에 더해서, 윌리엄 잭슨, 리오 그린리스, 조지 갱거스, 레이몬드 프랜즈. 이 열 한명 중에 2004년 현재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역자): 이 책의 저자 레이몬드 프랜즈는 2010년 6월 2일에 사망했다. 2015년 현재 통치체 성원은 모두 7명이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회의는 내가 기대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통치체 사회자는 윤번제로 돌아갔습니다. 당시(1971년) 사회자는 부 협회장 프레더릭 프랜즈(Frederick Franz)였습니다. 하지만 토론할 안건은 협회장 네이선 노어(Nathan Knorr)가 결정했습니다. 토론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면 협회장은 무엇이든지 회의 안건으로 올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회의에 임해서야 그 안건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수주일 동안이나 회의는 단지 여행하는 감독자로 추천받은 명단을 살펴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읽는 내용은 추천 대상자의 이름, 나이, 침례연도, 기름부음을 받았는지의 여부, 몇 년 동안이나 전 시간 봉사를 했는지 등입니다. 대다수 경우에 있어서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는 단지 이름을 아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어떤 개인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령 수리남, 잠비아, 스리랑카와 같은 출신의 명단을 읽은 후에야,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 대한 임명동의안에 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역자주 6) 일부 증인들은 회중의 장로 임명을 통치체가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의 장로 임명은 원래 두 세 명의 통치체 성원들이 봉사부 임원들과 상의하고 결정했었다. 이 방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단되었고, 그 이후에는 봉사부 임원들이 장로들을 임명하였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워치타워 협회의 각 지부가 장로임명에 관한 전적인 권한을 갖고 있었다. 통치체는 미국과 그 밖의 나라들을 포함하여 오직 여행하는 대표자들과 지부위원들만을 임명해오고 있었다. 내 생각에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러한 직분의 사람들에게 “통치체를 대표”한다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지방 회중 장로들보다 더 중요하고 더 큰 권위를 가진 직분을 가졌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내 기억에 통치체 성원 중 한명인 토머스 설리번(Thomas Sullivan, 보통은 “버드”(Bud)라고 불렸음)은 당시에 나이가 80대였는데, 그는 눈이 잘 안 보이는데다가 건강도 매우 나빴습니다. 그는 회의 중에 잠드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그렇다고 내용도 잘 모르는 사항에 투표하라고 깨우는 것도 서로 민망한 일이었습니다. 때때로 전체 회의 시간은 몇 분에 불과했습니다. 내 기억에 한번은 시작하는 기도를 포함해서 7분 만에 전체 모임이 끝난 적도 있었습니다.

때때로 협회장 노어는 증인들의 개별적인 특정 행동에 관한 문제들을 회의에 가져왔습니다. 이런 행위들에 대하여 협회는 지침(가령 제명이나 그보다 좀 더 약한 징계, 혹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1975년까지는 모든 결정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습니다. 토론이 끝나면 동의와 제청이 있었으며, 거수로 표결이 이루어졌습니다. 만약 만장일치로 채택되지 않으면, 만장일치를 얻기 위한 약간의 협상안이 마련되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 자연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다수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일종의 압력을 느끼곤 했습니다. 혼자만 다른 의견을 낸다든지 독립적이거나 부조화스런 입장에 서기는 어려웠습니다. 내가 거수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 표결에는 따라야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찬성하지 않음으로 협상안이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비록 그 협상안이 내 마음에 전적으로 흡족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키지 않더라도 다수에 따라 동의를 했습니다. 안건들이 처리되지 못하고 지체되는 것 보다는 신속하게 처리되기 위해 내가 동의하는 편이 나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를 점점 더 힘들게 하는 논쟁들이 발생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토론은 다음과 같은 것들로 이루어졌습니다: 가령 한 집안의 가장이 18세의 자녀에게 결혼을 허용했다면 그 가장은 장로의 자격이 있는지, 어떤 가장이 자녀들로 하여금 고등 교육 [역자): 여기서 “고등 교육”(Higher education)이란 고등학교 교육이 아니라 대학교육을 뜻하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까지가 기본 교육이기 때문에 대학교육에 대해 “추가 교육”(further education)이라는 말도 사용한다. 한국의 증인들도 이 단어를 일반적으로 대학교육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고등”이라는 말 때문에 고등학교 과정을 금지한 것으로 오해하는 증인들도 극히 일부지만 있었다. 한국의 일부 사전에서는 아직도 “고등교육”을 “중등 후 고등교육”이라고 정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아주 무리한 것은 아니었다.] 을 받게 한다면 장로의 자격이 있는지, [각주 8) 고등 교육은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믿음에 방해가 되며 부도덕한 행실에 쉽게 빠지게 하는 분위기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금기시했다.] 직장이 교대근무라서 때때로 (야간근무 때) 회중집회에 참석하지 못했다면 장로의 자격이 있는지; 장로들은 정황증거로 간음(간통)을 판단할 수 있는지 즉 남편은 아내에게만 간음한 사실을 고백했고 아내는 그 내용을 장로들에게 고발했을 때 아내의 증언만으로 성경적으로 이혼과 재혼을 허락해야 하는지, 무고한 배우자 측이 아니라 오히려 간통한 쪽에서 신청한 이혼이 법적으로 처리 되었다면 이것을 성경적인 이혼으로 볼 수 있는지; [각주 9) 당시 통치체의 결정은 무고한 배우자 쪽에서 이혼을 요구할 경우에만 성경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상대 배우자가 간음(간통)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다른 이유로 이혼했는데, 나중에 보니 상대 배우자가 이혼하기 전에 간음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알게 되었다면 그 이혼은 합당한 이혼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 그런데 만약 이혼 전이 아니라 이혼한 후에 간통한 것이라면 그것은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남편이 간음을 저질렀고 깨끗한 아내는 그 간음한 남편과 성관계를 가졌다면(남편이 간음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때도 아내는 자유롭게 이혼하고 재혼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아니면 권리가 취소되는지; 만약 증인이 증거활동을 하거나 증인의 믿음을 확고하게 고수하기 위해 법률을 위반하여 벌금이 부과되었다면 그 벌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지, [각주 10) 이때 벌금을 낸다면 그것을 죄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자신의 충절을 타협한 것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벌금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당시의 정책이었다. 나중에 이 정책은 변경되었다.] 적십자사를 통하여 식량이나 기타 원조를 할 수가 있는지(주요 문제는 적십자사에서 종교적 상징물인 십자가를 사용한다는 점과 적십자사를 유사종교 조직으로 볼 것인지의 여부였습니다. 아주 장시간에 걸쳐 토론했으며 그 다음 회기에서 계속해서 다루기로 결정했습니다.); 특정 국가들(예를 들면 인도네시아)에서 협회로 송금할 때 미국 달러화를 사용하는 것이 더 이득이기 때문에 비공식적인 다양한 방법을 관행적으로 사용해 왔는데, 해당국가의 독특한 법률로 그것을 불법으로 판단한다면 기존 관행을 중단해야 하는지; 또한 어떤 나라들에서는 설비나 기계를 들여오는 데 있어서 법으로 정한 무거운 수입 세금을 피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합당한지; 노동조합에 가입된 증인들이 파업에 동참할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또는 피켓시위를 하라는 임무를 대신해서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청소하는 업무는 가능한지; 징병소집을 대신해서 단순히 목화밭에서 일하라는 지시에는 따를 수 있는지(이것은 볼리비아에서 제기된 것)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예들은 내가 통치체에 있었던 첫 2년 동안 토론된 것들 중 단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결정은 나머지 증인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령 이혼 문제의 경우, 회중 장로들은 일종의 종교 재판관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만일 회중 성원 중 누군가가 이혼을 진행 중일 때 장로들은 그 이혼이 합당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그 이혼을 계속 추진하고 나중에 재혼까지 한 그 사람은 제명처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논란을 가져왔던 것은 캘리포니아 출신의 한 부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들의 침실에서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다룬 사진과 인쇄물을 발견했습니다. (목격자가 그 부부의 침실에 어떻게 그리고 왜 들어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지역 장로들은 조사와 심문을 통해서, 그 부부가 단순한 생식기의 결합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성행위를 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각주 11) 「파수대」영문 1969년 12월 15일호 765-766면(한국어는 「파수대」 1970년 4월 15일호 189-190면)에 실린 독자로부터의 질문에서는 처음으로 그와 같은 성적 행위에 대해 적지 않은 분량으로 다루었다. 틀림없이 그 기사 때문에 장로들은 그러한 행위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때 사안을 심각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이 기사는 사적으로 침실에서 은밀하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고백이나 고발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장로들은 그 부부를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브루클린과 통치체로 문의해왔습니다.

아침에 회의가 열리고 우리가 그 편지를 읽기 전까지는 협회장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 시간 후에 그 부부는 제명에 처해져야 한다고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이것은 그 후로 협회의 공식 지침이 되었고, 의도적으로 유사한 행위를 한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이 지침이 적용되었습니다. [각주 12) 「파수대」영문 1972년 12월 1일호 734-736면 참조; 또한 「파수대」영문 1974년 11월 15일호 703,704면 참조. (역자): 두 기사 모두 한국어로는 번역되지 않았다. 한국어 기사로 나오지는 않았더라도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내용들은 한국 지부에서 여행하는 감독자들이나 각 회중 장로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하여 관련 지침을 전달해왔다. ]

출판물은 이런 식으로 이해되거나 적용되었습니다. 만일 이 같은 성행위가 상호 동의하에 이루어지든 한 쪽 배우자가 단독으로 시도하든, 결혼 배우자는 이를 장로들에게 보고해야 합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행위를 시도한 배우자가 알리기를 싫어하더라도 시도하지 않은 배우자는 회중 장로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장로에게 찾아와서 고백하지 않는 것은 회개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간주되며, 제명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제명 처분은 친구나 친척들뿐만이 아니라, 구원의 전망이 있는 유일한 조직으로부터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장로들에게 고백하는 것이 아무리 힘들다고 할지라도, 협회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으로 작용했습니다.

1972년의 이 같은 통치체의 결정은 무수한 “사법 모임”을 가져왔습니다. 왜냐하면 장로들이 부적절한 성행위에 대한 보고나 자백을 철저히 추적하였기 때문입니다. 자매들은 사법 청취에서 장로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자신들의 성행위(결혼관계의 친밀도)에 답변하면서 치욕을 당하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배우자가 증인이 아닌 경우에는 결혼생활의 폭풍 같은 시기를 거쳤습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배우자의 입장에서는 침실에서의 은밀한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당했다고 생각해서 격렬히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결국 이혼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각주 13) 본부 ‘답신 작성부’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1976년 8월 9일에 통치체로 다음과 같은 메모를 전달하였다. “현행 방침 때문에 믿지 않는 남편(증인이 아닌 남편이라는 뜻)이 있는 가정에서 아주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이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흥분시키려는 것을 거절하며, 반대로 이런 방식으로 흥분시켜 달라는 남편의 요구도 모두 거부합니다. 이 때문에 결혼 생활은 결국 파경을 맞습니다.” ]

그 후 5년간에 걸쳐서 전례 없이 많은 서신이 통치체에 도달했습니다. 대다수의 내용은 통치체 성원들이 그들의 사생활에 이런 식으로 끼어들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성경적인 근거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쇄물을 통해 전개된 논리가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는지 호소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규제방침은 주로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로마서 1장 24~27절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협회로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성간인 부부사이의 성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아내들로부터 종종 편지들이 왔는데, 그것은 그들이 “성적인 전희”가 불결한 것인지에 대해 확신할 수가 없어서 느끼는 혼란과 고민을 호소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자매는 어떤 장로와 대화를 나눴는데, 장로는 “확실한 답변”을 위해서 통치체로 편지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매는 남편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으며, ‘특정한 형태의 전희’에 대하여 익숙하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편지에서 “나는 이것이 양심의 문제라고 믿고 있으나, 확신을 얻으려고 편지를 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편지는 이렇게 맺고 있습니다:

  • “나는 두렵고, 상처를 받았으며, [내 남편이] 진리에 대해 어떻게 느낄지 이 순간 염려하고 있습니다. … 내가 어찌해야 할지 알려 주십시오.”

또 다른 전형적인 편지에서 한 장로는 자신의 마음과 정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서 “‘어머니’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습니다. [각주 14) 많은 증인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우리 어머니”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파수대」영문 1952년 2월 1일호 80면과 「파수대」영문 1957년 5월 1일호 274,284면에 이 내용이 실렸다. 또한 「파수대」1994년 4월 1일호 32면 참조. (역자) 한국어로 「파수대」는 1952년 9월부터 공식 발행되기 시작하였다. 1952년 2월 1일호는 그 이전 기사로 번역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1957년 「파수대」는 당시에 한국어 잡지의 지면이 영문판의 3분의 1도 안 되는 지면제약 때문에 상당수 기사들이 번역되지 못한 것 같다. 대신에 영문판 1957년 5월 1일호에 나온 일부 표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잠언 6:20-23을 주제성구로 다루면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의로운 자들을 위해 빛이 번쩍이고’(시편 97:11)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직을 통해서 빛을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 빛은 잠언에 나오는 어머니의 가르침 혹은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리의 빛 가운데 걷고 있다면, 여호와 하느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인정해야 할뿐만 아니라 그분의 조직을 우리의 어머니로 인정해야만 합니다.” 또한 「파수대」 1994년 4월 1일호 32면에서는 조직을 가리켜 “엄마”(Mama)라고 부른다는 한 자매의 발언도 소개되었다.] 그 장로의 문제는 자신의 성생활이었는데, “실제 성행위에 앞서 전희는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아내와 함께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편지로 보내는 어떤 충고도 따르겠습니다”라고 협회에 대한 신뢰를 나타냈습니다.

이 같은 편지들은 사람들이 통치체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증거입니다. 통치체 성원들에 대한 신뢰로 인하여 그들은 사생활조차도 “어디서 선을 긋는지”를 협회가 결정해 줄 수 있다고 믿으며, 그래서 “그 편지에서” 지시한 그 선을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협회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많은 편지들을 썼습니다. 그 편지들은 종종 (명확하게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호한 지침을 제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난받는 성행위의 범주 내에서도 어떤 전희는 안 되고 어떤 전희는 비난에서 자유로운가 하는 것입니다.

협회 봉사부 직원이 1976년 6월에 작성한 메모가 있는데, 그것은 (장로들이 참석하는) 강습(세미나)을 진행하는 강사와 전화로 상담한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강습에 참석한 어떤 장로가 결혼생활 중에 명백히 금지된 성행위를 습관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강사 이름 * * *] 형제는 그 장로가 한 성행위가 실질적인 구강성교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 그 장로와 긴밀히 얘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강사]는 위원회의 다른 성원들과 의논이 필요한 상황임을 장로에게 말했고, 마침 강습에는 위원회 성원 두 명도 참석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서 의논을 했다고 합니다. 현재 이 [강사 이름 * * *]은 자신이 또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 나는 [강사 * * *]에게 협회로 자세한 보고서를 보내줄 것을 제안했고, 그렇게 해서 협회의 지침이 마련되면 다시 문의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성적으로 사적인 일들의 심문이 어느 정도로 이루어졌고, 전체적인 상황을 조직의 임원들이 어느 정도로 감독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편지를 통해 통치체가 마련한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을 행하면 장로들에게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마치 하느님 앞에서 행하는 것 같이 의무로 여겼던 것입니다.

미국 남서부의 어떤 형제는 아내와의 결혼생활에서 통치체의 지침을 위반한 사실을 장로들에게 고백했고, 장로들은 이에 관한 편지를 협회로 보냈습니다. 그 형제 또한 협회로 편지를 보냈으며, 8주 후에 다시 한 번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서 그는 “저는 답변을 기다리고, 그 답변에 대해 노심초사하며 무슨 답변이 올까? 기대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듭니다.”라고 썼습니다. 그는 회중에서 집회 전에 기도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직책으로부터 배제되었으며, “매주 회중에서 30년 동안이나 일해 온 것들을 거의 잃었습니다.”라고 그 편지에서 말했습니다. 그는 조속한 답변을 애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어떻게 하면 여호와의 조직과 함께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나는 정신적인 휴식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일부 장로들은 이런 문제를 다룰 때 적당한 정도에서 멈추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브루클린 본부 사무실로부터 문책을 당할 빌미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편지를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이 편지는 협회 봉사부에서 한 회중 장로회 쪽으로 보낸 편지 사본입니다. 이름과 특정 지명은 지웠습니다. [각주 15)이 사본은 먹줄을 사용한 옛날 타자기로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워치타워 협회의 직인이 찍히지 않았다. 약자 “SCE"로 표시된 것은 브루클린 봉사부에 있던 머튼 캠벨(Merton Campbell)이 작성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역자): 협회에서 회중으로 보내는 편지는 실명이 아닌 익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SCE”나 “SSE”처럼 부서와 보낸 사람 및 어떤 종류의 문서인지를 기호로 표시한다. 예를 들어 한국지부에서는 “S-****-KO” 이런 식이다. 또한 편지 아래에 표시된 CC는 첨부된 사본을 가리키는 기호이며, 여기에서는 캘리포니아 S**회중 사법위원회에서 보낸 편지를 복사해서 이 회중 장로회 쪽으로 동봉해서 보냈다는 의미이다.]

  • SCE:SSE 1976년 8월 4일

    수신: 여호와의 증인의 W*** 회중 장로회.
    주소: ****************** M*** W***

    친애하는 형제들: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S*** 회중 위원회로부터 J***가 연루된 문제에 대해서 작성한 7월 21일자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구강성교가 포함된 문제에 관하여 만약 회중 장로들 중에 누군가가 잘못된 조언을 베푼 적이 있다면 우리에게 알려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만약 회중 장로들 중에 결혼한 사람들에게 조언하면서 구강성교를 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조언한 적이 있다면, 그런 조언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입니까? 만약에 잘못된 상담을 했다면, 잘못된 상담을 받은 사람이 오해하지 않도록 나중에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의 여부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장로가 협회 출판물에서 구강성교에 대해 제공한 견해에 현재 동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형제 여러분 중에 장로로서 사람들에게 조언할 때 본격적인 성관계를 앞두고 전희의 한 방식으로 구강성교도 가능하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로들로서 본을 보이면서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시는 여러분에게 여호와의 풍성한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형제들로부터,

    cc: 여호와의 증인 S*** 회중 사법위원회, 캘리포니아

흥미롭게도 일부 장로들은, 통치체가 지침을 좀 너그럽게 적용시키거나 최소화해주길 바랐습니다. 미국의 한 장로는 협회로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일부 나이 드신 형제들이 느끼기에는 결혼한 부부가 성관계를 가질 때 특이한 체위를 포함해서 …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통치체가 너무 지나치게 정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이 장로는 자신의 느낌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 “여호와께서는 레위기 18장뿐 아니라 다른 장들에서도 성적인 행동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것까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결혼한 부부가 결합할 때 어떤 방법은 할 수 있고 어떤 방법은 할 수 없는지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왜 아무말씀도 안하셨을까요? 만약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이나 “연로자들”이 결혼한 부부의 사생활과 은밀한 영역을 조사하고 평가해서 합당한 조치를 취하기를 원하셨다면 세부적인 말씀을 해주지 않으셨을까요?

조직의 결정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사고나 수술로 인하여 정상적인 성적 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통치체가 내린 결정에 대하여 당혹감을 나타냈습니다.

이렇게 장애를 갖게 된 사람 중 한명은 조직이 금지한 방식의 성행위를 그때까지 수년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통치체가 금지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자구실을 못한다는 생각을 극복할 수 있었고 아내도 즐겁게 해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파수대」 잡지에서 새로 발표한 입장을 뒷받침할 성경적 근거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아내가 지침에 순종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상황이었고 자신도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결정을 따르게 됐다는 말을 적었습니다. 자신은 과거와 달리진 게 없지만, 결혼생활은 심각한 영향을 받을까 두려워서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내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허락받고 하느님의 뜻에는 어떤 허점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들은 통치체의 결정을 위반한 사람을 처리해야할 입장에 있는 장로들의 양심을 상당히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아까 말한 장로는 편지에서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 “나는 여호와와 그리스도 예수를 대표한다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 성실함과 신념 가운데 마음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성서의 법과 원칙만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회중 장로로서 책임을 수행할 때 이렇게 법과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여호와의 조직이 지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증명되고 올바르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조직이 지시한다고 무조건 따를 수는 없습니다. 나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 2장 13절에서 교훈한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사실 때문에 받아들이고 믿음을 유지할 수 있기를 진정으로 원합니다.

그의 입장표명은 훌륭한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날 많은 장로들이 이런 태도로 자유롭게 자신의 입장을 말하거나 그처럼 분명한 의견을 표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한 성행위들이 비록 내 표준과는 분명히 달랐지만, 그 문제에 대해 통치체가 제명 의견을 냈을 때는 사실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난 그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정작 표결이 시작되었을 때는 나도 다수 결정에 따랐기 때문입니다. 통치체가 나에게 결정을 뒷받침할 자료를 준비하라고 했을 때는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임명을 받아들였고 통치체가 원하는 글을 썼습니다. 따라서 방금 전 그 장로가 훌륭한 견해를 나타낸 것처럼 나도 그렇게 행동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이 조직을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는 유일한 지상 도구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렇게 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주제에 대한 대부분의 편지는 통치체가 직접 다루지 않았고, “서신 담당부” 직원들이나 봉사부 직원들이 답장하도록 임명받습니다. [역자주 16): “서신 담당부”(correspondence desks)라고 번역한 말은 한국 지부에서는 “문서부”로 지칭하는 부서이다. 미국 본부의 해당 부서를 가리킬 때는 “답신 작성부”(Writing Correspondence Department)라는 명칭도 사용한다. 이곳은 증인들과 일반 독자들이 보내는 편지를 다루는 곳이며, 「파수대」 1999년 11월 15일호 11면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1998년 기준으로 한 해에 약 1만 4000가지의 문의 사항을 처리했다고 한다. 봉사부(Service Department)는 분야가 달라서 회중 사법문제 등을 다룬다.] 하지만 통치체 성원들도 사람들이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당한다고 느낀다는 사실을 개인적인 대화나 접촉을 통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약 5년이 지난 후, 결국 그 문제는 다시 토의 주제로 올라왔습니다. 그 때 통치체는 제명 정책을 폐지했고, 신자들의 은밀한 성생활에 끼어드는 것도 사실상 포기했습니다. 통치체는 나에게 다시 출판물을 위한 자료를 준비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번에는 변화를 위한 자료를 지시한 것입니다. 비록 간접적이지만, 협회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파수대」영문 1978년 2월 15일호 30, 32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역자주 16) 해당기사는 “독자로부터의 질문”기사였으며 한국어 「파수대」에는 실리지 않았다.]

  • “하지만 좀 더 깊이 있게 그 문제를 들여다보면, 명확한 성경적 근거가 없는 한 결혼한 배우자들의 문제는 그 책임을 하느님께 맡겨야 합니다. 개인적 기준에 관한 문제를 회중 장로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두고 간섭하려 한다거나, 제명을 시도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장로에게 다가와 그 같은 문제를 상의하려고 하면, 장로는 성경적인 원칙을 가지고 그 문제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결혼생활을 “경찰처럼 단속”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목자처럼 행동함으로 도와야 합니다.

    이것은 관련된 그 사람이 온갖 종류의 성행위를 하더라도 모두 묵인해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성경원칙을 적용할 때 엄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충분한 근거가 없을 때에는 독단적인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문제를 다루는 사람은 자신이 모든 행실에서 훌륭한 특성을 반영하는 것처럼 여호와의 백성이 훌륭한 열망을 갖고 있다는 신뢰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는 그 같은 사적인 결혼 문제에 있어서의 판단을 여호와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께 전적으로 맡기자는 뜻입니다. 그분들은 필요한 모든 상황을 아시고 분별력을 사용하실 것이며,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는 우리가 모든 주요 문제들을 처리하는 방식, 즉 우리 중 압도적인 다수가 지침을 결정하고 교리를 만드는 이런 방식이 실제로는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 잡지에서 내 견해를 적었고 통치체는 이 기사를 승인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같은 생각을 여러 번 말했는데도, 그때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독자들이 보낸 편지들은 대부분 무시되었습니다. 따라서 수정된 견해를 밝히는 이 기사가 어떤 만족을 가져왔다 할지라도, 나의 노력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무슨 말이 어떻게 다시 쓰였다 해도 5년 전의 결정이 가져온 당혹감, 정신적 혼란, 감정적인 상처, 고통스러운 죄책감, 그리고 파혼은 보상할 수도 없고, 치료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결정은 사전 지식, 깊은 사고력, 특별한 기도 혹은 성서적 기준도 없이, 불과 수 시간 만에 차갑게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정은 시행되었고, 향후 5년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평생을 좌우했습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각주 18) 내가 통치체를 사임하고 나서 몇 년 후에, 협회는 “부자연스러운 성 행위”와 관련하여 사실상 과거의 정책으로 되돌아갔다. 「파수대」영문 1983년 3월 15일호 30,31면(한국어는 1983년 7월 1일호 20,21면)에서는, 장로들은 회중 안에서 부부들의 사적 결혼 문제를 “감시”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결혼한 부부가 “부자연스러운 성 관계”로 분류할 만한 행위를 하거나 옹호하는 사람은 “심지어 회중으로부터 추방되는 사태를 빚기까지 할 수 있다.”라고 적혀있다. 통치체는 1972년에 내렸던 엄격한 정책을 나중에 폐기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때 로이드 배리는 본부에 없었다. 그는 본부로 돌아와서 본인이 없을 때 내린 정책폐기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집필부를 관리하면서 「파수대」 기사 작성도 감독했었는데, 협회가 또다시 엄격한 정책으로 상당부분 되돌아간 것에는 그의 영향력도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1983년에 나온 이 기사는 과거 1972년 당시에 규제정책을 발표했을 때 사법모임이 급증한 것만큼의 후폭풍을 만들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전에 이 문제를 다뤘던 장로들이 쓰디쓴 결과를 경험했기 때문에 다시 심문을 확대하려는 욕심을 자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연관된 또 다른 문제가 남미의 한 증인에게서 발생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아내에게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정상적인 형태의 성관계였고, 그 형태는 항문 성교였습니다. 그래서 그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한 몸”이 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아내는 성경적으로 이혼할 근거가 없고 미래에 재혼할 수도 없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기존의 표결방식은 만장일치제였습니다. 따라서 나는 찬성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성서적 기준으로 이 여성이 그 같은 행위를 한 배우자와 이혼하여 자유로운 상태가 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 대단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결정은 어떤 남편이 동성애나 수간을 했더라도 성서적으로는 이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왜냐하면 출산의 가능성이 없는 남자끼리 혹은 짐승과 한 행위는 “한 몸”이 된 것은 아니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해 초 「파수대」에서는 사실상 그런 방식으로 특별한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각주 19) 「파수대」영문 1972년 1월 1일호 31, 32면 참조. (역자):이 기사는 한국어로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독자로부터의 질문 기사였는데, “결혼한 사람이 동성연애 행위를 했을 경우에, 이것으로 무고한 배우자가 재혼의 자유가 있는 이혼을 할 수 있는 성경적인 근거가 됩니까?”라는 질문을 다루었다. ]

이에 나는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워서, 마태복음 19장 9절에 나오는 그리스어 원어들을 조사했습니다. 협회가 발행한 「신세계역」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는데, 누구든지 음행의 근거 외에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간음하는 것입니다.” [역자주 20): 해당 성구는 2013년에 「신세계역」이 개정되면서 조금 바뀌었다. 현재 개정판에서는 기존에 “음행”(fornication)으로 번역했던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를 “성적 부도덕”(sexual immorality)으로 번역했고, 2014년 한국어 개정판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반영되었다.

여기에서는 “음행”(fornication)과 “간음”(adultery)이라는 서로 다른 두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수십 년 동안 워치타워 출판물에서는 그 두 단어가 본질적으로 같은 뜻을 갖고 있으며, “음행은 한 남자가 아내 이외에 다른 여자와(혹은 아내가 남편 이외에 다른 남자와) 갖는 간통 관계를 뜻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간음이나 음행이 실제로 같은 뜻이라면 예수께서 마태복음에서 굳이 서로 다른 두 단어(포르네이아와 모이케이아)를 사용해서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나는 베델 도서관에서 수많은 성경 번역판과 성서 사전들, 그리고 주석서들과 용어사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유가 명백해졌습니다. 내가 조사한 거의 모든 책에서 신세계역에 나오는 “음행”(fornication)은 그리스어로 포르네이아인데, 이는 매우 넓은 의미를 담고 있는 모든 형태의 성적 부도덕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성서 번역판들은 이를 “부도덕”, “성적 부도덕”, “음란”, “불충실” 등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각주 21) 마태복음 9:19에 나오는 “간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모이케이아인데, 이것은 넓은 의미를 가진 포르네이아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간음(간통)이라는 말이 뜻하는 것처럼 매우 한정된 의미를 갖고 있다. ] 용어사전들은 이것이 동성애 관계에도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성서 자체가 유다서 7절에서 동성애로 악명 높았던 소돔과 고모라를 언급하면서 포르네이아를 사용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연구 결과를 통치체 각 성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14쪽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불안해서, 프레더릭 프랜즈의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나는 그 동안에 한 일을 설명하고 이 자료가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질지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삼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어떤 반대도 없을 거라고 확신해.” 비록 간단하지만 자신감이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조사한 것을 보겠느냐고 묻자,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삼촌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다시 한 번 말했습니다.

내 직감으로는 내가 조사한 내용들 중 일부를 삼촌은 꽤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는 짐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는 협회에서 발행한 신세계역 성경 번역자들 중에서도 핵심 인물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포르네이아(“음행”)의 정확한 의미만큼은 알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각주 22) 신세계역 성경은 번역자들의 이름이 익명으로 되어있다. 실명 대신에, “신세계역 성서 번역 위원회”가 번역한 것으로 나온다. 그 위원회의 다른 구성원은 네이선 노어, 앨버트 슈로더, 조지 갱거스이다. 하지만 성경을 번역할 수 있을 정도로 성서 원어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갖고 있었던 사람은 프레더릭 프랜즈가 유일했다. 그는 신시내티 대학에서 그리스어를 2년 동안 공부했으며, 독학으로 히브리어를 공부했다.]

이 문제는 통치체 회의 안건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때 프레더릭 프랜즈는 지지를 표명했고, 내가 제출한 자료는 결국 통과되었습니다. 나는 변경된 견해를 「파수대」지에 실을 수 있도록 기사를 작성하라는 임명을 받았습니다. [각주 23) 「파수대」영문 1972년 12월 15일호 766-768면 참조. (역자):해당 기사는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레이몬드가 집필한 기사는 “독자로부터의 질문”이었는데, 질문은 이러하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 이혼의 근거를 논하시면서 서로 다른 두 단어 “음행”과 “간음”을 언급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적으로 이혼할 수 있는 근거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간음”(간통)만은 아니라는 것입니까?” 또한 해당 기사에서는 “음행”을 폭넓게 정의하면서도 부부간의 키스와 애무는 음행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하지만 동성애 관계는 “음행”에 해당한다는 점 등을 설명했고, 이것은 이전 기사의 견해를 명백히 수정한 것이라는 사실도 적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사례가 하나 있는데, 기사가 나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한 증인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남편이 수간을 했기에 수 년 전에 이혼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짓을 한 사람하고는 함께 살 수가 없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그 남자와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재혼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속했던 회중에서는 그녀에게 재혼할 수 있는 “성경적 자유”가 없다는 이유로 제명처분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파수대」기사가 나간 후로, 그녀는 이제 입장이 변경되었으니 제명처분으로 겪었던 치욕스러운 불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나는 이에 대한 답장으로 해당 기사를 통해서 그녀의 과거 행로가 결백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 경우에는 그나마 조직의 잘못된 견해를 인정하고 바로잡았다는 나름의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이런 잘못된 입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었는지를 생각하니 심각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단지 하느님께서만 아실 것입니다.

당시 통치체는 결정도 내리고 그 결정에 법률적인 힘도 있기에, 통치제는 사실상 전 세계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사법부와 입법부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 시대 이스라엘의 "산헤드린"과 같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으로 자기들의 문제를 가지고 오는 것처럼,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모든 중요한 질문들을 브루클린에 있는 통치체에 가지고 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도 통치체는 행정부가 아니었습니다. 행정적인 권위나 책임은 전적으로 협회장 네이선 H. 노어에게 달려있었습니다. 부 협회장 프랜즈가 통치체와 워치타워 성서책자협회를 비교하는 설명을 하기 전까지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의 연설은 나중에 「파수대」영문 1971년 12월 15일호에 기사로 실렸습니다. 부 협회장의 말은 과감하고 솔직했습니다. 그는 협회를 가리켜 통치체가 사용하는 “도구"(agency), 또는 “임시기구"(temporary instrument)일 뿐이라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754, 760면; 한국어는 「파수대」 1972년 2월 15일호 89면, 94면)

  • 29 이 세계적인 전도 조직은, ‘할-마게돈’에서 있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에서 멸망될, 인간이 만든 정치적 정부의 법이 요구하는 현 시대의 어떤 법인 단체에 맞게 짜맞춘 것이 아닙니다. (계시16:14-16) 지상의 어느 법인 단체도 그 전도 조직을 틀잡거나 지배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조직이 그러한 법인 단체를 위대하신 신정자의 사업을 위해 임시적인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뿐입니다. 따라서 그 조직은 그것에 대한 그분의 계획에 따라서 틀잡아집니다. 그것은 신권 조직으로서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아래로 지배되며, 하층에서 위 방향으로 지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조직에 속한 헌신하고 침례받은 성원들은 신권 통치하에 있읍니다! 지상의 법인 조직은, 그것을 인가하고 있는 인간이 만든 정부들이 조만간 멸망될 때에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
    그러므로 본 ‘협회’의 의결권을 가진 회원들은 이 통치체가 그 성원들을 ‘협회 이사회’의 성원이 되게 함으로써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사업을 위한 기구로서 이 “관리 대행기관”을 직접 사용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들은 ‘협회’가 관리체가 아니라 관리해야 할 일을 위한 단순한 대행기관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하여 ‘협회’의 의결권을 가진 회원들은 분쟁이나 분열의 어떠한 근거도 있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관리 대행기관”이 그 대행기관의 사용자 즉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을 대표하는 통치체를 통제하거나 지도해야 할 경우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꼬리가 개를 흔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가이사’의 법에 의한 법적 종교 기구는 그 기구의 창설자를 지도하고 통제하려고 하여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 법적 종교 기구의 창설자가 그것을 통제하고 지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과 일치하게 통치체와 법인 단체 ‘이사회’ 사이에 가장 능률적이고 완전한 조화를 갖기 위하여 의결권을 가진 ‘협회’ 회원들은 현명하게도 그들이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통치체의 성원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이사로 선출하였다.

설명에 등장하는 비유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그의 설명을 “개를 흔드는 꼬리 연설”(tail wagging the dog talk)이라고 불렀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이 표현은 매우 강력했습니다. 문제는 실상이 그와는 정 반대라는 것입니다.

방금 언급한 프랜즈 부 협회장의 연설 당시에도, 그리고 그것이 기사로 발행되었을 때에도 통치체는 결코 협회를 통제한 적이 없었습니다. 기사가 나온 뒤로도 약 4년간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 증인들에게는 이 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연설과 기사에서는 조직의 전체 역사에서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던 종류의 통치체를 설명했던 것입니다. 그런 통치체는 나중에 등장했는데, 그때는 조직의 역사가 시작된 지 90년 이상이 지났을 때였고 날짜로는 1976년 1월 1일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와, 또 그것이 사실인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세 명의 군주

  •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라들의 통치자들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큰 자들은 사람들에게 권세를 휘두릅니다.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20:25, 26. [역자주 24): 원문은 「신영어성서」NEB에서 인용하였지만, 여기에서는 「신세계역」을 사용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여호와의 증인의 역사는 특히 1879년 1월 1일에 「파수대」 잡지 창간호가 발행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워치타워 성서책자협회는 1881년에 처음으로 구성되었고 1884년에 법인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협회는 통치체를 ‘형성하지도, 지배하지도, 통제하지도, 지시하지도’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일은 있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통치체”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찰스 테이즈 러셀(Charles Taze Russel)은 친히 편집자가 되어 「파수대」 잡지를 발행했습니다. 러셀의 평생 동안 워치타워 협회와 연합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를 자신들의 유일한 목회자(Pastor)로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협회는 출범 당시부터 법인이사회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와 그의 아내가 처음부터 이사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사회는 통치체로 간주되지 않았고, 그런 역할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파수대」영문 1971년 12월 15일호(한국어는 1972년 2월 15일호 94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역자주 25) 당시에는 “왙취 타워”라는 한글 표기를 사용했었다. 1983년 하반기부터는 문교부에서 정한 로마자표기법에 따라 지금처럼 “워치타워”로 변경되었다.]

통치체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 근대에 와서 어떻게 이 통치체가 나타나게 되었는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지도로 있게 되었다. 현재 알 수 있는 사실에 의하면 통치체는 ‘펜실베니아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와관련이 있게 되었다. ‘시. 티. 러셀’은 19세기 말 4반세기 동안 그 통치체의 일원이었음이 명백하다.

여기서 프레더릭 프렌즈가 어떻게 “현재 알 수 있는 사실에 의하면”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마치 자신이 러셀과 함께 당시 협회에서 일한 것처럼, 또 당시의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시점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실제로 무엇을 보여줍니까?
법인 이사회와 관련하여, 러셀은 특별판 「시온의 파수대」영문 1894년 4월 25일호 59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1893년 12월 1일에 이르기까지, 러셀자매와 나는 총 주식 육천삼백팔십삼(6,383) 중에서 삼천칠백오(3,705)에 해당하는 주주 의결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임원을 선출하고 협회를 총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이사들도 처음부터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죽은 후에 자신들의 가치가 전면에 나타날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각주 26) 러셀 부인은 남편과의 의견 불일치로 인해 1886년 10월에 「파수대」 공동 편집자 직책을 사임하고 1897년 11월 9일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협회의 이사직을 1900년 2월 12일까지 유지했다. 그 후 1906년에 이혼했다. (역자):1993년에 워치타워 협회에서 발행한「선포자」책에 의하면 러셀과 그의 아내 머리아가 이혼 판결을 받은 것은 1908년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인 이혼이 아닌 별거 수당을 받는 “숙식에 있어서의 이혼”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두 가지 주장이 모두 맞을 수 있다. 1903년에서 1908년까지 여러 차례의 법정 공방이 있었는데 1906년에는 배심원과 판사가 머리아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이혼결정을 하였고, 그 후에도 우여곡절 끝에 1908년에 확정 판결이 났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포함한 이사들 중 누구도 통치체로 간주되지 않았음은 러셀의 일관된 행보에서도 명백히 나타납니다. 「파수대」영문 1923년 5월 1일호, 68면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때때로 사람들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누구냐고 질문합니다.――러셀 형제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라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협회라고도 말합니다.” [역자주 27)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마태24:45)이라는 표현은 한국에서 「신세계역」이 발행되기 전에 사용하던「개역한글판」의 표현이다. 원문에서는 「킹제임스 성경」의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신실하고 현명한 종”(faithful and wise survant)으로 번역하였다. 「신세계역」이 나온 후로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faithful and discreet slave)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옛날식 표현이 나올 경우에 「킹제임스 성경」의 표현보다는 주로 「개역한글판」 표현을 사용할 것이다.]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이 계속됩니다:

  • 두 가지 말이 모두 사실입니다. 러셀 형제는 가장 절대적인 의미에서 협회 자체였으며, 지상에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서 협회의 정책이나 방향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때때로 협회 관계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들의 제안에 귀 기울이기는 했지만, 결국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렇게 행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파수대」 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C. T. 러셀은 1906년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제시하는 진리는 환상이나 꿈 혹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계시된 것도 아니고 모두 한꺼번에 계시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점진적으로, 1870년부터 눈에 띄게 증가했으며 1880년부터는 특별한 계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진리가 이처럼 분명히 밝혀지는 것은 인간의 창의력이나 예리한 직관력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왔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말하지 않고 다른 어떤 대행자도 찾을 수 없다면 돌들이라도 소리 지를 것입니다. [각주 28) 「파수대」영문 1906년 7월 15일호 229면. (역자): 발췌된 기사의 일부 번역은 「선포자」책 143면에도 나오기 때문에 그 번역을 재인용하면서 생략된 부분을 채웠다.]

스스로를 “하나님의 대변자”라고 믿었기에, 왜 그에게는 통치체가 필요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위의 말을 하고 나서 러셀은 “마지막 당부와 유언장”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후인 그해 1916년 12월 1일호 「파수대」에 그 내용이 실렸습니다. 이 유언만큼 찰스 러셀이 「파수대」 잡지를 온전히 통제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도 없기 때문에 유언의 전체 내용을 이 책 부록에 실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어떻게 말했는지 인쇄된 유언의 두 번째 항(문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나는 「시온의 파수대」, 「구신학 계간지」 및 「천년기 새벽- 성경 연구」 시리즈 책들과 다양한 소책자들, 찬송가 서적들, 기타 간행물들을 워치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 기증합니다. 나는 내 생애 동안 이러한 출판물들을 온전히 통제해야 한다고 강하게 믿었습니다. 따라서 내가 사망한 이후에도 내 희망에 따라 다루어져야 합니다. 나는 이러한 나의 소망들을 내 유언으로서 다음과 같은 말로 남깁니다.

비록 그가 협회(1884년에 법인체로 등록)에 「파수대」를 기증했지만, 그는 분명히 그것을 자신의 잡지라고 생각했으며, 사후에도 자신의 뜻대로 발행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망을 대비하여, 자신이 직접 지명한 5명을 ‘편집 위원회’로 구성하였고 그들이 전적으로 「파수대」의 발행을 책임지도록 지시했습니다. [각주 29) 러셀은 러더퍼드를 이 다섯 명 중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그 대신 유사시에 결원을 채울 수 있는 또 다른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두 번째 그룹에 포함시켰다.] 그는 또한 5명의 여성들을 수탁자로 지명하여 자신의 모든 주주 의결권을 넘겼고, ‘편집 위원회’ 성원 중에 어떤 사람이 탄핵 고발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면, 이 5명의 여성들이 다른 수탁자들(이사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함) 및 ‘편집 위원회’의 나머지 위원들과 함께 판결위원회를 구성하여 고발을 받은 해당 편집 위원회 위원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도록 마련했습니다. [각주 30) 1959년에 발행된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의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 in the Divine Purpose)책 영문 64면에 따르면, 법적으로 러셀의 표결권은 그가 사망한 이후에 무효화 되었다.]

한 사람으로는 위원회를 구성할 수가 없기 때문에, C. T. 러셀의 생애 중에는 즉 1916년에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통치체와 유사한 어떤 기구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후임자 조셉 F. 러더퍼드의 재임 중에도 동일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편집 위원회나 이사회가 통치체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가정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 관계를 확인해보면 그런 가정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17년 1월 협회 연례총회에서는 러더퍼드가 그의 뒤를 이을 워치타워 협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의 재임 초기에 협회의 7명의 이사들 중 4명(과반수)이 그의 독단적인 직무수행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이사회를 집단으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들과 협력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독단적으로 행동했으며, 먼저 조치를 취하고 먼저 결정을 내린 후, 나중에 그 결과를 그들에게 알렸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이사들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서 목회자 러셀이 따르도록 규정한 지침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반대를 표명하자 곧바로 그들의 지위를 박탈했습니다. [각주 31) 이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건은 러더퍼드가 「종말을 고한 비밀」(The Finished Mystery)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행했을 때에 일어났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러셀의 유작”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클레이턴 우드워스와 조지 피셔가 쓴 것이다. 러더퍼드는 이 책을 쓰는 문제에 대해 사전에 이사들과 상의하기는커녕 이사들은 그 책이 “베델 가족”이나 본부 직원에게 배포될 때까지도 그 책이 출판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중에 발행된 워치타워 출판물들에서도 그렇지만,「하나님의 목적 안에서의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 in the Divine Purpose)책에서는 주된 이유가 네 명의 이사들이 반대를 표명했기 때문이라고 기술했다.(영문 70, 71면) 그 책에서는 러더퍼드가 「종말을 고한 비밀」책을 본부 직원들에게 발표한 당일(1917년 7월 17일)에 이사들에 대한 해임도 발표한 것처럼 묘사하지만, 이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실제로는 그 책을 발표하기 전에 이미 이사들의 해임 발표가 있었다. (역자): 해당 출판물은 한국어로 나오지 않았지만, 일부 회중에는 극히 소량이 보급되었다. 그 책을 대신하여 1993년에 나온 새로운 역사서 「여호와의 증인-하나님의 왕국 선포자」책 67면에서도 이 내용을 비슷하게 다루고 있다.]

비록 러셀이 직접 지명해서 평생 이사의 직분을 얻었지만, 그들 중 4명은 협회의 연례회의에서 결코 지명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협회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던 A. H. 맥밀런(A. H. MacMillan)의 말에 따르면, 러더퍼드는 이 점에 관해 자신의 사외 변호사와 상의를 한 후 법적인 근거 하에 이들을 해고한 것이었습니다. [각주 32) A. H. 맥밀런이 저술한 「믿음의 행진」(Faith on the March, 뉴저지주 잉글우드 클립스에 위치한 프렌티스-홀 출판사‘Prentice-Hall, Inc.’에서 1957년에 발행) 영문, 80면 참조. 이 책의 서문은 N. H. 노어가 썼다.]

따라서 러더퍼드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협회 이사회 과반수가 제기한 반대에 대하여 인정하고 수정할 수도 있었고, 다른 하나는 언급한 것처럼 법적인 근거 하에 자신의 직권으로 이사들을 해임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후자를 선택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사들을 새로 임명했습니다.

편집 위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파수대」 1938년 6월 15일호 185면에서는, 이 위원회에 속한 대부분이 1925년에 “나라의 탄생”(1914년에 “왕국이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해 “맹렬히 반대”했다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 잡지는 협회장에게 반대했던 사람들이 어떤 결과를 당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보여줍니다:

  •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 [그 기사가] 발행되었다. 이것은 현재의 편집위원회가 해산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주님께서 친히 이 조직을 운영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제 편집위원회는 해산되었습니다. 러더퍼드는 효과적으로 반대를 제압하고 조직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에 있었던 흥미로운 특징은, (1917년의 핵심쟁점이었던) 「종말을 고한 비밀」책 뿐만 아니라 「파수대」 잡지에서도 목회자 러셀이 성경에 예언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라는 가르침을 계속해서 강력하게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각주 33) 「종말을 고한 비밀」책 영문 4, 11면 참조. 「파수대」지 영문 1922년 3월 1일호 72, 73면, 1922년 5월 1일호 131면, 1923년 3월 1일호 67, 68면 참조.] 이렇게 모든 신자들이 이 가르침에 온전히 일치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파수대」 1922년 5월 1일호 132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충실함은 충성스러움이다

  • 충실함은 충성스럽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께 충성하는 것은 주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선택하신 도구를 버리거나 부인하는 것은 주님 자체를 버리거나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원칙에 따르면 주인이 보내신 종을 거부한 사람은 주인을 거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현재 진리 가운데 거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러셀 형제의 봉사 활동을 통하지 않고 다른 경로로 하나님의 계획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에스겔을 통하여 한 종의 직분을 미리 상징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사람 한 명을 지명하여 그 도시(그리스도교국)로 파견하셨는데 그는 탄식하는 사람들에게 계몽적인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으로 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라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하지만 주께서는 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마련을 계속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직무를 담당하게 된 사람은 러셀 형제였습니다.

1923년 3월 1일호 「파수대」(68, 71면) “충성심에 대한 시험”이라는 기사에서도, 러셀의 가르침과 방식에 복종하는 것이 곧 주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8 현재 진리 안에서 기뻐하는 우리 모두는, 러셀 형제가 주님의 특별한 직무를 충실히 완수했고, 주의 모든 소유를 관리했다는 것을 믿습니다.
    _____________
  • 38 모든 동료 종들은 각자의 능력이나 잠재력을 발휘하면서, 주님의 방식과 조화롭게 추수활동을 함으로서 더 향상된 능력과 잠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방식은 주님께서 러셀 형제에게 제시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러셀 형제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의 직무를 온전히 맡았기 때문입니다. 러셀형제는 주의 일을 주의 방식대로 수행했습니다. 그러므로 러셀 형제가 주님의 방식대로 일한 것이라면, 다른 모든 방식은 주님의 방식을 반대하는 것이므로, 결국 주님의 왕국을 돌보는데 충성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문제는 매우 분명해졌습니다. 누구든지 ‘주인의 집 관리인’(러셀)의 가르침과 방식을 따르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해 죄 짓고 결국 배교자가 될지를 택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권위에 이토록 강하게 호소한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권위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의 사후 불과 수 년 내에 (혹은 이와 같은 충성이 요구되던 동안에도) 자신이 평생 동안 마련한 교리들과 자신이 감독직으로 임명한 사람들이 새로운 회장(러더퍼드)에 의해 사라졌습니다. 러셀이 유언장에 남긴 “유언”은 법적인 효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아울러서 도덕적인 효력도 없게 되었습니다. 「파수대」1931년 12월 15일호(376면)에서는 이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 24 예수께서 하셨던 예언의 말씀은 잘 알려진 다음과 같은 사실들로 성취되었습니다: 즉 1914년에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보좌에 왕을 앉히셨습니다. 곧바로 이어진 3년 반은 왕국 초대에 응한 사람들이 이기적인지 아닌지를 시험하는 기간이었습니다. 1916년에 워치타워 성서책자협회 회장이 사망했습니다. 협회장의 서명이 포함된 종이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보통 “마지막 당부와 유언장”이라고 불리는 문서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유언장이 아니었습니다. 러셀 형제는 그가 사망하기 수년 전에 이미 자신이 그런 유언장을 작성할 수가 없도록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조직의 사업은 사람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어떤 피조물의 유언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따라서 “유언장”에 적힌 대로 실행하면서 주께 영광과 영예가 돌아가도록 협회의 일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주님의 통로”라는 「파수대」에서는 불과 8년 전에 러셀이야말로 “주님의 일을 주님의 방식대로 수행”한 사람이라고 말했으며, 따라서 “다른 모든 방식은 주님의 길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었습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이때, 러더퍼드는 「파수대」지가 그토록 강력히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 주장했던 러셀의 방침을 배척했습니다. 러더퍼드의 그런 방식에 반대의견을 내면 그가 누구든 악한 동기와 앙심을 품은 사람으로 다음과 같이 묘사되었습니다.

  • 이 무리는 “러셀 형제의 유언이 무시되었다. 그리고 「파수대」가 그의 지침과 다르게 발행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떨어져 나가거나 추방되었고, 울며 통곡하면서 동료 형제들에게 이를 갑니다. 그들은 지상에 있는 주님의 조직이 한 사람의 유언대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몹시 두려워하면서 자신들의 손을 들거나 악어의 눈물을 흘립니다. 달리 말해서, 그들은 가식적으로 울면서 통곡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협회를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통곡하고 불평하며 웁니다. 그들은 주님의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를 갈면서, 한때는 자신들의 동료 형제였던 사람들에게 악의와 원한을 품고서 거짓 주장을 합니다. 유다는 이와 동일한 무리에 관해 언급하면서, 그들이 이처럼 울며 통곡하기 시작하는 때가 예수께서 심판하시기 위해 여호와의 성전에 오시는 때에 명확히 적용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들은 원망하는 자들이요, 불평하는 자들이요, 그들의 정욕[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 또 그들의 입으로는 과장하는 말[자신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다는 말]을 하고, 유익을 위해 사람들의 외모를 칭찬하는 자들이라.[달리 말해서, 그들은 특별한 사람을 칭찬(아첨)하면서 자기들도 칭찬받으려고 하는데, 이러한 그들의 태도와 행동 과정은 유다가 말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됩니다.]” 그들이 겉으로는 러셀 형제에게 대단한 애정을 갖고 헌신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것은 이기적인 이득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을 기록으로 남기신 목적과 주님의 명백한 의도는 주님의 백성이 이 무리를 식별하도록 하셔서 이런 부당한 일꾼들을 피할 수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역자주 34) 해당 「파수대」1931년 12월 15일호 기사에서 인용한 성구는 유다서 16절로 영문 「킹제임스」KJV에서 인용한 것이지만, 한국어 번역은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였다.]

이 같은 변덕스럽고 불안정하며 엉뚱한 과정을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도구로 세우셨고 자신의 지침을 지상 백성들에게 제공하시는 통로로 인정하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1925년 J. F. 러더퍼드는 사실상 의심을 불허하는 명령을 협회에 내렸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조직의 기능들을 더욱 강하게 통제했습니다. [각주 35) A. H. 맥밀런은 「믿음의 행진」(Faith on the March)책 152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러셀은 우리가 책임을 어떻게 수행할지에 대한 많은 것들을 개개인의 재량에 맡겼다. … 러더퍼드는 전파 활동에서 통일된 모습을 원했는데, 사람들이 개인적인 견해를 표현하거나 개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거나 개인의 마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러더퍼드는 차츰 자기 자신을 조직의 주요 대변인으로 만들어갔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 해야 소식을 모순 없이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워치타워 협회에서 발행되는 모든 출판물들, 또 지상의 전 회중에게 영적인 양식으로 공급되는 여타의 모든 출판물들도 완벽히 통제했습니다. 어느날 삼촌(프랜즈)은 나를 사무실로 불러서 러더퍼드가 베델 가족에게 제시한 새로운 견해의 토론 주제를 말해 주었습니다. [각주 36) 이 문제의 논점이라는 것은 로마서 13:1에 “위에 있는 권세”(higher powers)라 한 것은 이 땅의 정부 당국이 아니라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새로운 관점에 관한 것이었거나 장로회를 폐지하는 것에 관한 것 둘 중 하나였는데, 그 어느 쪽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역자) “위에 있는 권세”라는 표현은 「개역한글판」에서, “higher powers”라는 표현은「킹제임스 성경」KJV에서 근거한 말이다. 「신세계역」이 나온 이후로는 “위에 있는 권위”(superior authorities)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토론에서 삼촌은 그 새로운 견해에 대해, 성서적 기준으로 볼 때 부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러더퍼드는 삼촌에게 그 새로운 견해를 지지할 자료를 준비하도록 지시를 내렸습니다.

또한 이 “판사”(러더퍼드)는 「파수대」를 통해서 예언과 전파사업을 강조하는 정책을 확고히 세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기사들에는 사랑, 친절, 관용, 오래 참음 같은 주제가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거의 60년에 이르는 러셀과 러더퍼드의 재임기간에는 통치체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드러나지 않았으며, 오직 자신들의 특권에 따라 독점적인 권위만 행사해왔을 뿐입니다.

1993년, 협회는 새로운 역사책 「여호와의 증인-하나님의 왕국 선포자」(Jehovah's Witness-Proclaimers of God's Kingdom)를 발행했습니다. 이는 전에 발행되었던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의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in the Devine Purpose)을 대신하는 책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면으로 볼 때 이 책은 최근에 발행된 세 권의 책들, 곧 1983년에 초판이 인쇄된 「양심의 위기」(Crisis of conscience)와 그 후속편으로 1991년에 인쇄된 「그리스도인 자유를 찾아서」(In Search of Christian Freedom), 그리고 칼 올로프 욘손이 쓴 책 「이방인의 때 재고」(The Gentle Times Reconsidered. 초판, 1983년)에 대한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점은 새 역사책의 머리말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역사책에서 처음으로 인정한 사실들도 어느 정도 있었는데, 그것은 증인들이 만약 다른 경로를 통해서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될 때 받을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에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선포자」책은 독자들에게 “이 책의 편집인들은 객관적이 되어 솔직한 역사를 제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라고 보증했습니다. [각주 37) 「여호와의 증인-하나님의 왕국 선포자」책에 나오는 “머리말” 참조. 「선포자」책 200면에는 이미 다른 곳에서 공개한 사진 즉 1926년에 브루클린 본부 직원들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장면을 찍은 기념사진이 실려 있다. 그 사진은 1991년에 발행한 「그리스도인 자유를 찾아서」(In Search of Christian Freedom)책 영문 149면에서 공개한 사진이다. 이 사진은 2년이 지난 후 발행된 새로운 역사책에도 실렸는데, 워치타워 출판물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그때까지 협회는 67년 동안 그 사진을 소장하고 있었다.]

수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은 과거의 기록을 본 적이 없으며, 협회가 성장하면서 일어난 관련 사건들을 개인적으로 경험한 적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중앙권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권위구조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릅니다. 따라서 그들은, 1993년에 나온 그 책의 편집인들이 “솔직한 역사”를 객관적으로 제공했다는 상상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그 책에 좌지우지 됩니다.

나는 이보다 더 “미화”된 책을 즉 “객관”성이 결여된 책을 읽은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 책은 조직의 역사와 정책을 현실과 상당히 다르게 묘사했습니다. 이것은 협회장 러셀과 러더퍼드의 진술을 다룰 때에도 드러납니다.

마태복음 24: 45-47에 나오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신분(실체)에 관해서, 이 「선포자」책에서는 마침내 (142면, 143면, 626면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즉 “여러 해 동안” 「파수대」잡지에서는 찰스 테이즈 러셀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 선택되었다는 견해를 제시했음이 사실임을 인정했으며, 러셀 자신도 1896년 이래로 개인에게 적용된다는 이런 견해가 “이치적인 것 같아 보인다”고 말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러셀은 특별하게 선택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한 개인(즉 자신)에게 적용된다는 견해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 책 각주에 나온 「파수대」 참조를 실제로 찾아보면) 1881년에 취했던 자신의 원래 입장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이 실제로는 정확한 성경적인 적용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것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인정하는 대신, 이 새로운 역사책에서는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키도록 러셀이 1881년에 표방한 주장 즉 그 신분(실체)이 “그리스도의 몸” 전체에 적용된다는 주장에 계속해서 초점을 맞추면서 강조했습니다.

「파수대」 1909년 10월 1일호에서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지 특정 개인에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을 러셀은 “적”으로 간주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파수대」1916년 10월 16일호 특별판에서는 이 주제를 다루면서 그 단어가 자신에게 적용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그렇게 인정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것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각주 38) 「양심의 위기」책 219-222면 참조. 또한 「그리스도인 자유를 찾아서」책 영문 78-84면 참조.]

아울러서 이 책은 워치타워 조직의 가르침 때문에 생긴 모순된 상황에 대해 설명하지 못합니다. 첫 번째는, 현재 협회의 가르침은 1919년에 예수께서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반열” 즉 집단을 선택하시고 인정하셨다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는, 1919년 당시 사람들이나 그 이후 여러 해 동안에는 정작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 집단이 아니라 러셀 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믿었으며, 그들은 러셀이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신 1874년부터 즉 1914년보다 수십 년 앞서서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은 2대 협회장 러더퍼드가 조직을 독선적으로 통제했음을 부인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선포자」책 220, 221면 참조) 거기에서는 러더퍼드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부를 때에는 어린 아이가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라는 칼 클라인(Karl Klein)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가 실제로는 근본적으로 겸손한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기록은 협회의 이사들 혹은 편집 위원회 성원 중 누구라도 그를 반대한 자들은 직위를 박탈당했다는 것입니다. 칼 클라인이 묘사한 러더퍼드의 겸손은 사실과는 다르며, 그 “판사”의 말은 곧 법이었습니다. 이 점은 당시 협회 본부 직원 누구와 대화를 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그의 재임 마지막 5년 동안 조직에서 매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분명한 영향을 끼쳤으며,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들었습니다. 오늘날 절대 다수의 증인들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라 하셨고, “자신의 말에 따라 의롭다고 인정받을 것이며, 자신의 말에 따라 정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2:34,37) 1920년대부터 1942년까지 출간된 「파수대」를 읽어보면 누구든지 겸손함이 아니라 독선과 권위주의가 기사 속에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인정하듯이 이 기사들은 러더퍼드의 원칙 가운데 쓰인 것들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조직의 정책과 가르침, 그리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자들을 비난했으며, 심지어 가혹한 언어까지 사용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하나님의 왕국 선포자」책은 같은 쪽에서는 러더퍼드가 협회의 지도자로 간주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러더퍼드가 자신이 죽기 전인 1941년에 자신이 지도자가 아니라고 말한 것을 인용했습니다. 러더퍼드 사진 바로 밑에 적힌 다음의 설명은 협회 역사책 집필진이 붙인 것입니다. “증인들은 그가 자신들의 지도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워치타워의 지지자들(증인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보이지 않는 지도자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러더퍼드를 보이는 지상의 지도자로 믿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말씀, 즉 “또한 지도자라고 불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지도자는 오직 그리스도뿐입니다.”(마태 23:10)라고 하신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러더퍼드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도자로 알려졌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진설명: 선포자책 221면에 실린 사진. 사진 하단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실렸다: 1941년의 J. F. 러더퍼드, 증인들은 그가 자신들의 지도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한 워치타워 대회 보고서인 「사자」(The Messnger)에 실린 사진과 그 설명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진 속의 대회는 1931년 7월 25일에 유럽의 주요 대도시에서 열린 것입니다. 이 사진(두 번째 사진) 아래의 설명에는 대놓고 “그들의 보이는 지도자(Their visible leader)가 파리에서 막 연설하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진설명: 프랑스어 현수막:“좋은 소식을 알리는 여자들이 큰 군대로구나.”-시편68:11. 사진하단설명: 그들의 보이는 지도자(Their visible leader)가 파리에서 막 연설하려고 한다.))

다음 두 장의 사진에서는 러더퍼드를 “사령관”(Chief)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진설명: 런던에 있는 베델 가족. 함께 웃는 모습이 보이십니까? 사령관이 그들에게 막 어떤 농담을 마친 직후의 모습.)


(사진설명: 사령관이 정원에서 갓 따온 “코프 잘랏트”(독일상추)를 세척하는 과정을 시찰하고 있다. 한 끼 식사에 겨우 4부셸(108킬로그램)! )

네 번째 사진에서는 러더퍼드가 대회의 “대원수”(generalissimo)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역자주 39) “대원수”로 번역한 영어 단어(generalissimo)는 또한 “총통”이나 “최고 사령관” 등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이 대회의 보고서인 「사자」(The Messnger)는 워치타워의 새로운 역사책(「선포자」)에서 인용한 러더퍼드의 1941년 연설(자신은 지도자가 아니라는 발언)보다 10년 전에 인쇄된 것입니다. (사진 자료들이 증명하듯이) 러더퍼드는 워치타워의 지지자들이 자신을 지도자로 생각했음을 몰랐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증거들은 그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이미지(지도자)를 부인하려고 노력했던 것을 헛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진설명: 워치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회장이자 이 대회의 대원수)

판사 러더퍼드가 1942년 1월 8일 사망한 후, 협회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네이선 H. 노어(Nathan H. Knorr)를 3대 협회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조직의 기본적인 구조는 근본적으로 이전과 같았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이런 점이 사실상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러더퍼드 사망 당시에는 증인의 숫자가 10만 8,000명이었는데, 노어의 재임당시에는 2백만 명이 넘었기 때문입니다.

집필자도 성서 연구생도 아닌 노어는 부회장 프레더릭 프랜즈(Fred Frenz)에게 성서적인 문제를 검토하도록 일임했습니다. 아울러 프랜즈를 조직의 주요 필자로 의지했습니다. 이미 언급한 바 있는, 통치체 내부에서 토론될 문제들은 수십 년간 프랜즈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만약에 협회장 노어가 어떤 결정이 세계 어느 나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면, 그는 항시 프랜즈와 개인적으로 이 점을 의논했습니다. 이런 관계는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고, 그들의 결정은 세계의 회중 장로들에게 돌아갔습니다. 특별한 결정은 한 사람, 프랜즈 부 협회장의 관점와 생각에 주로 의존했습니다. 만약 프랜즈가 마음을 바꾸고 회중의 장로들에게 결정을 번복하면, 협회장 노어는 그를 따랐습니다.

이 점은 모든 협회의 출판물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적용되었습니다. 협회장은 다양한 집필자들이 제출한 자료들 중에서 「파수대」에 올릴 주요 기사를 선택한 다음, 이 기사들을 교정하고 필요시 다듬기 위해 편집부로 이송했습니다. 그리고 기사들이 만들어지면 협회장과 부 협회장이 읽고 승인했으며, 그런 후에야 「파수대」가 출판되었습니다. 내가 1965년에 편집부에 들어갔을 때, 칼 애덤스(Karl Adams)는 나에게, 편집부는 그 같은 기사에 대해 교정할 수 있는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으니, 프랜즈 형제가 집필한 것은 아무런 교정 없이 ‘출판할 준비’가 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협회장의 원고를 협회장이 기각시킨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967년 협회장 노어는 우리 3명(칼 애덤스, 에드워드 던랩, 그리고 나)에게 프레더릭 프랜즈가 준비한 “독자로부터의 질문” 원고사본을 나눠 주었습니다. [각주 40) 당시에 이 사본을 받았던 세 명중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 반열에 속한다고 공언했던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나는 1946년 이후 기름부음 받은 자로 공언해왔다.] 그 해 직전에 프레더릭 프랜즈에 의해 책 한권이 발행되었는데, 이 책에서 그는 1975년이 인간역사 6,000년이 끝나는 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천 년은 하루에 해당하므로, 그는 6,000년을 6일에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각주 41) 1966년에 발행된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가운데서의 영원한 생명」(Life Everlasting in Freedom of the Sons of God)책 29, 30면.(한국어판역시 29, 30면. 1968년에 발행) ]

지난 수십 년 동안 여호와의 증인들 사이에서 이와 같이 흥분을 유발하는 성명이 발표된 적은 없었습니다. 정말로 주체할 수없는 기대감이 분출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1940년대에 경험했던 ‘마지막 때가 가까웠다’는 느낌보다도 훨씬 더한 것이었습니다.

프레더릭 프랜즈가 준비한 “독자로부터의 질문” 원고를 검토한 우리는 몹시 놀랐습니다. 그 원고에서는 6,000년 기간의 끝에 대해 논하면서 당시 새로 발행된 책에서 발표했던 연도보다 실제로는 1년을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존재 6,000년의 끝은 1975년이 아니라 1974년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칼 애덤스가 노어에게 들었던 말에 의하면, 노어는 그 원고를 전달받고 프랜즈를 찾아가서 갑자기 바꾼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고 합니다. 프랜즈는 확신 있게 “이것이 틀림없습니다. 1974년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노어는 이런 변화에 대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3명에게 프랜즈가 작성한 원고 복사본을 주면서, 우리 각자의 개인적 연구 결과를 보내라고 요구했습니다. 부 협회장의 논리적 근거는 창세기 7장 6절과 11절에서 대홍수가 일어났던 때와 관련된 숫자를 기수와 서수로 사용했다는 것이 사실상 전부였습니다. 각 구절에서는 “육백 살”(“six hundred years”)이라는 표현과 “육백년 ”(“six hundredth year”)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1년 전 발표된 그 책에서는 홍수사건을 계산하면서 1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는데, 그 1년을 고려하여 다시 계산하면 결과적으로 인간존재 6,000년은 1년 더 이른 연도 즉 1975년이 아니라 1974년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우리 3명 모두는 그 기사가 실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형제들의 마음에 엄청난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내용을 각자 정중한 말로 보고했습니다. [각주 42) 그 당시에 내가 제출한 편지에서는, 그 주장이 지나치게 일부 성구에 의존한 것인데다가 그것을 근거로 하더라도 연도를 변경시켜야 할 만큼 명백한 것이 아니며, 기껏해야 매우 희박한 근거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협회장은 흔쾌히 동의했고, 준비된 원고는 기사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좀처럼 드문 일입니다.

“통치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쓰이기 시작한 것은 노어의 재임 중이었습니다. [각주 43) 「파수대」영문 1938년 6월 1일호(168면)에서는 “조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앙 기구”(central body) 및 “중앙 권위”(central authority)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1세기 사도들 및 직접 그들과 함께했던 사람들로 구성된 회의를 가리키는 말이었을 뿐, 현대의 통치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통치체”(governing body)라는 명칭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파수대」영문 1944년 10월 15일호 315면과 1944년 11월 1일호 328-333면부터이다.] 출판물들을 통해서 이 용어는 협회 이사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1955년에 출간된 협회 간행물 「전도인으로서 자격을 구비함」(Qualified to Be Ministers)책 영문 381면에서는 이 점이 잘 드러납니다: [역자주 44) 이 책은 한국어로 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을 한국어로 확인하려면 「파수대」 2001년 1월 15일호 28면을 참조. 거기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당시에는 펜실베이니아 법인의 이사회와 임원들이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 즉 언제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온 집단과 거의 같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 주께서 성전에 오신 이후에 눈에 보이는 통치체는 법인 이사회와 거의 동일하게 여겨져 왔습니다.

이처럼 일곱 명의 협회 이사회 성원들은 모두 “통치체” 성원들로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통치체의 상황은 러셀과 러더퍼드 시대 이사들의 상황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말리 콜(Marley Cole)은 자신이 쓴 책 「여호와의 증인-신세계 사회」에서 이 점을 잘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각주 45) 말리 콜(Marley Cole)이 저술하고 뉴욕 빈티지 프레스(New York: Vantage Press)에서 1955년에 발행한 책인 「여호와의 증인―신세계 사회」(Jehovah’s Witnesses—The New World Society) 86-89면. 콜은 이 책을 마치 증인이 아닌 일반인이 쓴 책인 것처럼 보이도록 집필했다. 평소에 협회 간행물을 받지 않던 사람들도 외부 출판사가 발행한 책이라면 읽어볼 것이라는 생각에서 만든 것이다. 즉 홍보 전략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는 이 책의 “내부 반란”(Internal Rebellion)이라는 장에서, 1917년 최초로 일어난 러더퍼드와 이사회 사이의 논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4명의 이사들은 조직이 재구성되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회장이 곧 이사회였기 때문이다. 회장은 이사들과 의논하지 않았다. 자기 혼자 일을 처리하고 나중에 이사들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알렸다.
    러더퍼드는 이러한 ‘일방주의’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이전 협회장 레셀도 일방주의자이긴 마찬가지였다. 러셀은 이사회의 사전 재가없이 행정적인 명령을 내렸었다.

그리고 나서 콜은 각주에 덧붙였습니다.

  • 찰스 러셀 이후 협회장들의 제한받지 않는 자유, 즉 독선은 계속 이어져왔다. 이 점은 노어가 신세계역 성경을 발행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각주 46) 「여호와의 증인―신세계 사회」책 88면.]

「파수대」1950년 10월 15일호 315, 316면에는 이 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협회 이사들이 신세계역 성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협회장으로부터 처음 통보받은 것은(아마도 이 사업은 조직이 해온 작업 중에서 가장 큰 일일 것입니다.) 신세계역 성서 그리스어 판이 이미 완성되고 이제 곧 발행되려는 시점이었습니다.

통치체가 설립되기 전인 1971년까지도 법인 이사회는 정기적인 모임을 갖지 않았습니다. 단지 협회장의 결정에 따라서 이사들을 불렀을 뿐입니다. 때로는 수개월 동안 아무 회의가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모임의 의제는 고작해야 협회에서 장비를 구하거나 다른 재산을 매입하는 것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어떤 성경적 자료들이 출판된다든지 하는 문제들은 의논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부 협회장 프랜즈는 1954년 월시 사건(Walsh Case)으로 알려진 소송과 관련하여 스코틀랜드 법정에서 증언하면서 이 사실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곳에서는 교리상의 중대한 변경이 있을 경우에는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그리고 이사회의 동의를 먼저 구하고 교리를 변경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부 협회장은 그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이것은 공식 법정 기록물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변호사가 질문하고 프레더릭 프랜즈가 답변합니다.)

  • 질문: 영적인 문제에 관하여 이사회의 각 성원들은 모두 동등한 발언권을 갖습니까?
  • 답 : 협회장이 대변자입니다. 그는 연설을 통해서 성경 이해에 관한 진보를 보여주는 발표를 합니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본부 성원들 일부를 지명하여 성서의 어떤 부분에 빛을 더 비춰주는 다른 연설들을 발표하도록 임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질문: 당신이 말씀해주신 이러한 진보들에 대해 이사들은 투표를 합니까?
  • 답 : 안 합니다.
  • 질문: 그런 것들은 어떤 과정으로 발표되는 것입니까?
  • 답 : 이런 내용들은 편집 위원회를 거칩니다. 나는 성서적인 검토를 한 후에 승인하는 서명을 합니다. 그리고 이를 노어 협회장에게 보냅니다. 그러면 노어 협회장은 최종적인 서명을 합니다.
  • 질문: 그것이 이사회를 거치는 경우는 전혀 없겠군요?
  • 답 : 없습니다. [각주 47) 여기에서 부협회장 프레더릭 프랜즈가 “편집 위원회”라는 말을 사용하긴 했지만, 나중에 그는 편집 위원회 구성원이 오직 자신과 노어 협회장 밖에는 없다고 밝혔다. 공식적인 “편집 위원회” 성원은 이 두 명 말고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1965년에 이르러 출판물에 실릴 내용을 승인하기 위해 서명할 권한이 칼 애덤스에게도 주어졌는데, 그는 협회 이사도 아니었고 “기름부음 받은 자” 반열로 공언한 적도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문제점이 법인 이사회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1971년 이전에 칼 애덤스가 소집한 회의에 몇몇 집필 위원들과 자리를 함께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파수대」 잡지에 실릴 기사에 대해 ‘누가 협회장의 승인을 구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라이먼 스윙글(Lyman Swingle)이 가서 허락을 받아오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스윙글의 대답은 간단했지만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왜 나에요? 내가 뭘 할 수 있습니까? 난 그냥 이사일 뿐이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스코틀랜드 법정에서 증언한 부 협회장의 발언은 “통치체”가 당시에 명목상으로만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며,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반열”이 “영적 양식”을 준비하고 공급했다는 주장이 허구라는 것도 보여줍니다. 「파수대」 잡지와 기타 출판물들에 실릴 내용은 두 명 혹은 많아야 세 명이 결정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협회장 네이선 노어, 부 협회장 프레더릭 프랜즈, 끝으로 “기름부음받은자 반열”에 속하지 않는 칼 애덤스였습니다. 부 협회장의 분명한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영적양식”을 제공하면서 이사회 위원들은 물론이고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반열”에 속한다고 공언한 사람들 중 아무에게도 승인해 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마치 러셀이 1916년까지 협회 출판물에 대해 전권을 가지고 통제했던 것처럼, 그리고 러더퍼드가 1942년까지 이와 똑같이 행했던 것처럼, 노어도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권위를 사용하여 “영적 양식”을 준비했고 여호와의 증인 공동체에게 공급했습니다. 그 일은 두세 명의 극소수 사람들만 관여했으며, 예수께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돌보도록” 임명하신 것으로 간주된 “반열”은 전혀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역주 48) 마태복음 24:47. (역자): 여기에 나오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기름부음받은 자” 반열과 사실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그동안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2012년 10월에 변경되었다. 현재는 레이몬드가 지적했던 것처럼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기름부음받은자 반열” 중 남은자 전체가 아니라 통치체와 같이 극소수 남자들만을 의미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1919년에 “모든 소유”를 맡게 되었다는 기존 가르침도 미래로 옮겨졌다. 더 자세한 내용은 본 3장 마지막 각주 참조.]

심지어 통치체가 기존 7명의 이사들을 포함하여 더 많은 숫자로 확장된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1975년에 있었던 한 회의 기간에는 부 협회장이 대회연설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여 토론에 붙인 바 있었습니다. 이 자료는 (마태 13장에 나오는)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에 관한 것이었으며, 예수께서 비유 가운데서 말씀하신 “하늘 왕국”이 실제로는 “가짜”왕국, 즉 “모조품”이라는 주장을 상세히 펼쳤습니다. 기사 원고를 읽었던 통치체 성원 한 명은 그 주장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토의가 끝난 후에 진행한 찬반 표결에서는, 참석자 14명 중 노어와 프레더릭 프랜즈를 포함해서 모두 5명만 그 원고를 대회 연설로 사용하는 것에 찬성했고, 나머지 9명은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원고는 대회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내용은 그해 대회에서 발표된 서적에 실렸으며, 몇 달 후에는 「파수대」에도 실렸습니다. [각주 49) 1975년에 발행된 「세계 고난으로부터의 인류의 구원은 가까웠다!」(Man’'s Salvation Out of World Distress At Hand!)책 영문 206-215면 참조. 또한 「파수대」영문 1975년 10월 1일호 589-608면(한국어는 「파수대」 1976년 1월 15일호 32-48면) 참조.] 비록 거의 2/3에 가까운 통치체 성원들이 끝까지 납득할 수 없었던 논증이었지만 그 사실이 협회장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협회의 잡지나 인쇄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호와의 증인의 모든 활동들 ― 세계 90개 이상의 지부(모든 지부에서 지부감독자는 임명받은 구역 즉 해당 나라에서 “그리스도교 주임 봉사자”로 묘사되었음)를 감독하는 일, 모든 여행하는 대표자들을 관리하는 일, 길르앗 선교 학교의 운영 및 모든 선교 활동을 임명하는 일, 대회의 개최 및 대회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일 ― 이 모든 것들은 독점적인 특권을 가진 한 사람(협회장)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통치체가 이런 것들을 진지하게 토의해서 결론을 내렸거나 그렇게 하지 않았거나 상관없이, 결국은 모든 것이 협회장의 판단과 결론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 모든 것은 부 협회장 프랜즈의 “개를 흔드는 꼬리” 연설 후에 발행된 기사들과는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한 다음 기사는 너무나 강력합니다.


[각주 50) 「파수대」영문 1971년 12월 15일호 761면(한국어는 「파수대」 1972년 2월 15일호 94-95면) 참조]

하지만 불행하게도 요약된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 자체가 그것을 증명한다”는 말처럼, 일찍이 워치타워 협회가 발행한 출판물 내용을 보거나 협회 이사들의 증언들을 확인해 본다면 실제적인 의미의 통치체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러셀이 재임을 시작할 때부터 네이선 노어가 재임하던 시기까지 즉 위에 인용한 「파수대」 기사가 나올 때까지도 그런 의미의 통치체는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위에 언급된 기사가 인상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는 가상이며 허구일 뿐입니다. 사실은 아주 초기부터 군주적 체계가 조직 전체를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군주”의 그리스어 어원은 “홀로 통치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전상의 정의는 “탁월한 지위와 권한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역자주 51) “군주”로 번역한 영어단어 “마너크”(monarch)는 “홀로”, “오직”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모노스와 “통치”라는 뜻의 아르케에서 유래한 말이다. 협회 출판물에서도 이 단어를 대부분 “군주”로 번역했다.] 초대 협회장은 인자한 모습이었고, 2대 협회장은 엄격한 독재자의 모습이었으며, 3대 협회장은 매우 사무적인 모습이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세 협회장 모두 군주 권력을 행사했다는 점입니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반열”을 구성하는 “기름부음 받은 자” 대부분을 포함하여) [역자주 52) 괄호속의 내용은 증인 가르침의 변경으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마태 24:47에 관한 그동안의 가르침은 2012년 10월 15일에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렸던 연례총회를 통해 다시 크게 변경되었다. 변경된 내용은 「파수대」 2013년 7월 15일호에 자세히 실렸다. 그동안 증인 조직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반열과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 같은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며 “종”이라는 단수 표현은 전체를 하나의 집단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또한 통치체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반열을 대표하는 것으로 가르쳐왔다. 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기원 33년 오순절부터 현재까지 계속 존재해왔다고 가르쳤다. 조직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됐던 이 가르침이 어떻게 변경되었는지 아래에 핵심 부분만 인용한다.
「파수대」 2013년 7월 15일호 20면 3항: “그런데 주의 깊이 더 연구하고 기도하면서 묵상한 결과,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에 관한 예수의 말씀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고 있던 바를 조정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파수대」 2013년 7월 15일호 21면 8항: “따라서 이 충실한 종에 관한 예수의 말씀은 1914년에 마지막 날이 시작된 이후에야 성취되기 시작한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파수대」 2013년 7월 15일호 21-22면 9항: “그러면 땅에 있는 기름부음받은 자들 모두가 충실한 종을 구성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파수대」 2013년 7월 15일호 22면 10항: “그러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는 소수의 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을 먹이셨습니다. 이 방식과 일치하게 그 종도 그리스도의 임재 기간에 영적 양식을 준비하고 나누어 주는 일에 직접 관여하는 기름부음받은 형제들로 이루어진 작은 집단입니다. 마지막 날 기간 내내, 충실한 종을 이루는 기름부음받은 형제들은 세계 본부에서 함께 섬겨 왔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에는 여호와의 증인 통치체가 그 종으로 일해 왔습니다. 그 종은 하나의 집합적인 종, 다시 말해 둘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단 하나의 종인 것입니다. 따라서 통치체는 집단으로서 함께 결정을 내립니다.”
「파수대」 2013년 7월 15일호 22-23면 12항: “1914년부터 1919년 초반까지의 기간에 예수와 그분의 아버지께서 숭배를 위한 영적 마련인 성전에 와서 그것을 검사하시면서 그 답이 밝혀졌습니다.…1919년에 예수께서는 그들 중에서 유능한 기름부음받은 형제들을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으로 선택하여 자기 집 하인들을 돌보도록 임명하셨습니다.” (굵은 글씨의 강조는 모두 해당 잡지에서) ]
“일반 전도인”으로 이루어진 절대 다수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앞에서 언급한 1971년(한국어 1972년) 「파수대」기사에 나온 내용의 실태를 전혀 몰랐습니다. 다만 핵심부에 있는 사람들은 실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권위를 갖게 되면서 실태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75년이 되자 통치체 성원 다수는 이제 몸통의 자격으로 “꼬리를 흔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통치체 성원들은 이미 출판물이나 연설을 통해서 제공된 내용과 실제 현실이 달랐기 때문에 이것을 일치시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에 통치체가 내린 결정이 본질적으로는 일찍이 1917년에 네 명의 이사들이 제안했던 조직개편안과 동일 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워치타워 출판물에서는 그 네 명의 이사들이 제안했던 조직개편안을 ‘야심적인 음모’이자 ‘반역적인 공모’로 묘사했으며, 결국 ‘그 음모는 하느님의 은혜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식의 설명도 했습니다. 그들의 제안은 결국 55년이 지나고 나서야 실현되었는데, 그것도 통치체에서 다시 수 개월간 큰 소동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이루어진 것입니다.